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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갑진년 댓글 0건 조회 1,337회 작성일 24-01-01 04:42

본문

닥쳐라. 누가 동생이냐.”

“……둘 다 적당히라는 말뜻을 모르는 거지?”

맹호악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사나운 기세로 혈마에게 덤벼드는 헌원후와, 심상 세계의 온도를 통째로 낮추며 혈마가 빠져나갈 곳을 막아 버리는 은예린.

그들과 혈마의 신형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사방으로 굉음을 터트렸다.

콰콰콰콰콰콰콰쾅!

“…….”

사도들은 잠시 멈춰 서서 그들의 싸움을 지켜봤다. 웬만해서는 동요를 드러내지 않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멍한 모습이었다.

그때, 아직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검존이 사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많이들 지쳐 보이는구나. 잠깐이라도 호흡을 고르거라.”

“왜…….”

일사도는 수십 년 전 마지막으로 본 것과 똑같은 검존의 얼굴을 바라봤다.

과거 혈교를 탈출하려던 그들을 막아섰던 자신들은 분명 죽어서도 잊힐 리 없는 원수일 터였다.

그런데 왜, 검존은 원망과 분노가 아니라 안타까움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단 말인가.

그때 검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신창이가 된 사도들의 몸을 살피면서였다.

“언제부터 선천지기를 끌어서 쓰고 있었더냐?”

“……이 상황에서 중요한 질문인가?”

생사대적과 싸우는 일이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가진 내공만으로 맞설 수 없기에 선천지기를 끌어다가 썼다. 수명을 갉아먹는다고 해도 응당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검존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더는 끌어다 쓰지 말거라. 너희들의 스승이 슬퍼할 것이니.”

“…….”

검존은 일사도의 대답을 듣지 않고 고개를 돌려 혈마와 싸우고 있는 녹림투왕, 광마, 빙월신녀를 바라봤다.

그들은 전성기를 능가할 만큼 눈부신 무위를 떨치며 혈마를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혈마 또한 쉽게 당하지 않고 매섭게 반격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어린 사손들의 몸에 가는 부담이 큰 탓이지. 결국은 너희들이 해내야 할 것이야.”

“……무엇을? 어떻게?”

일사도는 자연스럽게 묻고 있었다.

검객으로서의 실력이라면 이미 검존을 뛰어넘었다고 자부했다.

그럼에도 그는 검존에게 조언을 구했다.

무극검을 창안한 사조(師祖)라면 무언가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그리고 그것은 적절한 질문이었다.

“검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아서 휘둘러 보거라.”

“……뭐?”

“너희의 스승에게 하고 싶었던 말, 서운했던 감정들, 애증과 분노, 오랫동안 쌓인 응어리를 모조리 무공에 담는 것이다.”

우우웅-!

검존은 수십 년 만에 쥔 검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주름진 얼굴에 따뜻한 온기가 깃들었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무공으로 이어져 있음이니, 그것으로 너희의 스승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너희가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서투르다고 해도, 저 아이라면 알아들을 게다. 누구보다 눈치 빠른 녀석이 아니더냐?”

그 말에 잠시 서로를 바라본 사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사도가 친우들을 대표해 검존에게 대답했다.

“알겠소. 그리 해 보지.”

“그리고 사조에게는 말을 높이거라.”

“……예.”

검존이 내뿜는 은근한 박력에, 일사도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잠시 쉬면서 내공과 체력을 회복한 사도들과 검존이 싸움에 합류하자, 맹호악이 그들을 힐끗 돌아봤다.

“대형 오셨소? 너희도 왔느냐. 어서 한 손씩 거들어라.”

한 사내로부터 이어진 스승과 제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내공을 끌어 올리자,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만난 그들의 무공이 서로 공명하며 거대한 기운을 일으켰다.

화아아아아악!

고금을 통틀어 가장 괴이한 존재인 혈마조차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했다. 역천의 기운이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헛된 짓이다. 롤토토 이런다고 그가 깨어날 것 같은가!”

발작적으로 소리치는 혈마를 여덟 명의 절세고수가 포위했다. 맹호악이 주먹을 우두둑 풀며 씨익 웃었다.

“우리가 빈틈을 만들 테니, 너희가 한 방씩 깊게 먹여 줘라. 세상모르고 자는 놈도 벌떡 일어나게 말이다.”

이후 펼쳐진 싸움은 혈마를 포위한 네 사부와 사도들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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